* 왜 못 먹습니까?
사료 제조회사에서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신제품
프리미엄 고급 개 사료를 만들었습니다.
신제품에 대한 제품설명회가 열렸습니다.
담당 직원의 화려한 설명이 끝나자 참석자가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참석자 :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착각으로 사람이 먹는 일은 없을까요?
직원 :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사람이 실수로 먹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참석자 : 유기농 청정원료이고, 영양가 높고 위생적으로 제조된 사료라서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직원의 마지막 한 마디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직원 : 사람은 비싸서 못 먹습니다.
과연 그 비싼 개 사료는 판매에 성공했을까요?
점점 고가품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고 있기에 그 건 알 수 없습니다.
기본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사치와 낭비에 빠져들게 됩니다.
개는 아무리 사랑스럽고 귀해도 개다워야 합니다.
아무리 삶이 풍성해져도 사람보다 비싼 음식을 개에게 먹이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삶이 옵션에 빠져들면 끝없는 불행의 늪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잠19:24)
오죽하면 성경에 이런 말씀이 기록 되었을까요?
점점 더 편하기를 바라면 숟가락질을 하는 것도 귀찮아 질 수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산 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 좋은 것, 더 큰 것, 더 빠른 것, 더 비싼 것,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지금에 감사하고 만족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모든 상황에 적응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더 나은 것에 있지 않고 상황을 수용하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12)
* 금주 강의 효과
금주를 호소하는 운동가가 지역 사람들을 모아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강의 도중에 격한 감정으로 소리쳤습니다.
이 지역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누구입니까?
제일 큰 집을 가진 사람이 누구입니까?
성실하게 일 하는 여러분이 아닌 바로 술집 주인입니다.
옷을 최고로 잘 입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장 비싼 차를 타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역시 술집 주인입니다.
그런데 그 돈들이 모두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여러분한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지출하는 술값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며칠 후 강연을 들었던 사람 하나가 거리에서 금주운동가와 마주쳤습니다.
그는 감동적인 강연을 잘 들었다고 하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금주운동가는 자신의 강연이 성공적이었다는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으며 대답 했습니다.
“아! 그러세요! 술을 끊으셨군요?”
금주운동가의 질문에 쑥스러워 하며 지나던 사람이 대답 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바로 다음 날 술집을 차렸습니다.”
때로는 내가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한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다음에는 내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시중에 판매 되는 약 중에 부작용이 없는 약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약들이 판매 되고 있는 이유는
부작용 보다는 호 작용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선한일, 착한 일의 결과로 손해를 볼 수 있고,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선한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잘 한다고 한 일이 잘 못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는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와 교회는 세상을 구하고 영혼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선한 일에도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때는 포기하고 돌아 설 때가 아닌 더 선한 결심을 해야 할 때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 천국과 지옥 사이
천국과 지옥 사이에 담장이 있었습니다.
아침 순찰을 돌던 천국 경비 대장이
담장에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천국 경비 대장이 지옥 경비 대장에게 따졌습니다.
“야! 니들이 죄인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서 구멍으로 죄인들이 불법 입국하잖아! 이 구멍 어떻게 할 거야?”
지옥경비 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따졌습니다.
“야! 우리 쪽에서 구멍 낸 증거 있어?”
천국 경비대장이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아니!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어? 이 구멍 너희들이 책임지고 막아!”
“우린 절대 못해.”
“좋아! 그럼 법대로 하자고!”
천국 경비 대장의 마지막 말에 지옥 경비 대장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법대로 하자고? 변호사, 판검사, 정치인들이 다 여기 있는 건 알고 있지?”
유머이긴 하지만 가장 정의로워야 할 법이 지옥에 있다는 것은
법으로 세상이 아름다워 질 수 없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툼과 시비 끝에 사람들이 소리치는 “법대로 하자!”는 것은
공평한 것도, 정의로운 것도, 바르게 해결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의미입니다.
사건이나 일의 해결이고 뭐고 상관없이 상한 감정 풀이나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매 순간 자신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등의 해결인지? 화풀이 인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해결 보다는 화풀이를 선택 합니다.
그리고 화풀이의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더 큰 갈등과 아픔에 시달리게 됩니다.
법은 선한 사람들 때문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법의 시작 자체가 악인과 악한 사건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법관에게 가기 전에 길에서 화해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5:25)
법으로는 아픔을 씻을 수 없습니다.
아픔과 상처와 갈등의 진정한 해결은 진리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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